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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이야기

맹꽁이 태어나다

2018년 4월 4일 수요일


진통

만삭인 아내가 아침에 잠에서 깨더니 병원에 가야하겠단다. 이슬이 비치며 진통이 시작됐다고. 어제까지 회사에 출근한 아내는 오늘에서야 회사에 전화하여 출산 휴가를 쓰겠다고 말한다. 나도 회사에 전화하여 3일간 휴가를 냈다. 그러나 다음날 중요한 이벤트가 있어 회사에 안 나갈 수는 없었다. 잠깐 가서 내일의 일처리를 마저 한 다음에 인수인계 후 돌아와야 했다.
씻고 짐을 싸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아내를 산부인과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회사에 가서 일처리 후 돌아왔다. 혹여나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 생길까, 아니면 내가 없는 사이에 애를 낳아버리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에 악셀 페달을 밟은 발에 힘이 자꾸만 들어갔다. 점심시간쯤에 산부인과 분만 대기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내는 이따금씩 엄습하는 진통을 겪느라 안색이 좋지 못했다. 물어보니 아직 자궁 경부의 문이 1cm밖에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몇 시간 후 3cm 정도 열린 것을 확인 후 분만실로 자리를 옮겼다. 분만 대기실과는 다르게 분만실 안은 노란 등불에 조도가 낮아 아늑한 느낌을 주는 듯했다. 진통 간격이 2분 내지 1분 간격으로 점점 짧아졌고 아내는 진통이 올 때마다 고통스러워했다. 평소 씩씩한 아내여서 큰 걱정은 없었다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슬슬 걱정이 된다.

무통주사

자궁문이 4cm까지 열렸을 때 간호선생님이 무통주사를 놔줬다. 몇분 후 아내는 평온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무통주사의 효과가 좋다고 하더니 실제 그러한가 보다. 천국이 펼쳐진다더니 아내는 정말로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4시 정도 되어서 장모님이 병원으로 오셨다. 다만 분만실에는 보호자 외에는 출입이 불가하다고 하여 아내가 분만실 밖으로 걸어 나와서 장모님을 맞이하였다. 뭔가 좀 아리송한 기분이 든다. 아무리 무통주사를 맞았다지만 저리도 태연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건가 싶지만 내 눈앞에 분명히 벌어지는 광경은 영양제 주사를 손에 꽂은 채 서 있는 아내와 맞은편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장모님,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나다. 한 20분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아내는 분만실로 들어가고 나는 장모님을 모시고 8층 입원실로 안내했다.
다시 분만실로 내려와 아내와 얘기를 나누는데 대략 7시 정도가 되자 마취가 풀려가는지 아내가 다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이건 견딜 만한 고통이 아니야 라며 연신 외치며 끙끙거린다. 여태껏 아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간호선생님에게 가서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얘기해달란다. 얼른 나가서 부탁했지만 마취가 풀리자마자 바로 주사를 또 놓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 말을 아내에게 전달하자 조금 참아보겠다고 하지만 이내 못 참겠다고 다시 가서 얘기하라고 한다. 방금 요청했는데 또 요청할 수는 없어서 아내에게 조금만 참아보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곧 간호사가 아내의 상태를 살피러 들어왔는데 아내가 직접 무통주사를 놔 달라고 요청을 한다. 간호선생님은 1시간 후에 놔 주겠다고 하며, 무통주사를 놓으면 출산이 지연될 수가 있으니 웬만하면 또 안 맞는 것이 나을 거라고 권고한다.
그렇게 진통과 사투를 벌이며 1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내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내 손에도 땀이 흥건하게 배인다. 1시간이 지나자 아내가 간호선생님을 찾더니 무통주사를 놔 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는 간호사. 빨리 주사를 놔달라는 아내. 초조하게 지켜보는 나. 30분이 더 지나서야 무통주사를 놔 줬다. 다시 천국이 펼쳐진 듯 아내의 안색에 평온이 깃든다. 하지만 걱정이다. 출산이 지연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아내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본인의 고통이 잦아들자 어머니 생각이 나나 보다.
"엄마가 저녁 안 먹었을 텐데."
"응, 내가 김밥이라도 사서 갖다 드릴까?"
"응 그렇게 해줘."

출산

김밥을 사서 입원실의 장모님께 갖다 드린 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입원실 내 전화기가 울린다.
"곧 출산하니 내려오세요."
간호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 마음은 다급해졌다. 아니 아까 김밥 사러 갈 때만 하더라도 당분간 아무 일 없을 것 같더니 하필이면 내가 자리를 비운 새에 출산이 임박하지. 30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이렇게 금방 아기가 태어날 수 있는 건가. 얼른 5층 분만실로 달려갔다. 분만실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아내 주변에 두 명의 간호선생님과 한 명의 의사선생님이 계셨다. 분만실 밖 데스크의 간호선생님이 나를 다시 데리고 나와서 가운을 입히고 입에는 마스크를, 머리에는 두건을 씌웠다. 손을 깨끗이 씻고 분만실 밖에서 대기한다. 나중에 아내가 하는 말이 아기를 낳는 모습을 신랑한테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줄지 아니면 출산 후 분만실로 들어오게 할지 선택하라고 했을 때 후자를 선택했다고 한다.
초조하게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안에서 "응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 내 아이의 울음소리인가. 기분이 묘하다. 이내 간호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분만실 안으로 들어간다. 산모 다리 쪽을 지나쳐 머리 쪽으로 안내를 받고, 거기에는 아내와 아내의 가슴팍에 찰싹 붙어있는 맹꽁이(태명이자 아명)가 보인다. 뭔가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조그마한 핏덩어리가 내 아들이라니. 탯줄을 내가 직접 잘랐다. 지금도 그 순간이 눈에 선하다. 아내의 가슴팍에 안겨있는 맹꽁이, 그리고 회색 빛깔의 탯줄. 곧 간호선생님이 신생아를 들어 올려 준비된 욕조에 담근다. 아니 그 전에 욕조 속 아기를 잡는 방법을 먼저 배웠다. 겨드랑이에 검지를 끼고 팔뚝으로 머리를 받쳐주라고 한다. 시킨 대로 했더니 이내 맹꽁이는 따뜻한 물 속이 편안한지 몸에 힘이 빠지며 울지도 않는다.
간호선생님의 도움으로 목욕을 무사히 끝낸 후 아기를 보자기에 싸서 따로 아빠와 사진을 찍고 발도장도 찍었다. 아기는 6층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나는 분만실로 와서 출산 후 회음부 접합 수술을 마친 아내와 잠시 시간을 보냈다. 고생했어. 무사해서 고마워. 나는 먼저 입원실로 갔고,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아내도 입원실로 왔다. 이런저런 교육을 받았는데 도중에 옆 분만실에서 또 다른 생명이 탄생해서 모든 간호사가 그리로 가는 바람에 조금 늦어졌단다. 잊을 수 없는 긴 긴 하루가 지난다.